고성의 문화와 역사

Culture and History

문화재

3. 향교(鄕校)

작성일
2025-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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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향 교(鄕 校)

지금의 고성군은 고성군과 간성군을 통폐합한 관계로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고성과 간성에 각각 향교(鄕核)가 었었다. 여기서는 수성지(水械誌)를 근거로 구간성 향교를 다루기로 한다. 수성지 학교조에 군북천 마기라산의 낙맥인 규봉산록(圭峰山麓)에 있으며 군성에서의 거리는 약 7리이다. 문루가 있었고 계산을 조망하면 천변에 송림수백수가 은영하며 시내를 따라 수석이 있고 석벽에는 화훼과 도림이 우거져 있다. 구교는 군성 북쪽에 있던 것을 군 서쪽 5리 지점인 대대방으로 옮겼다. 명종(明宗) 병오년(丙丙午年)에 군수 함헌이 다시 택지하여 해상방척촉화동(坊擲薥花洞)에 이건하였다. 경신년(庚辰年)에 군수 신동(申暉)이 구기 동록 아래쪽 2리되는 곳에 향교 터를 잡고 여기에 이건하였다는데 여기가 규봉산록이다. 이 터를 잡은 것은 지사(地師) 소정우와 원귀 두 사람이고 그 때의 제임으로 있던 어재태가 신기서를 택하였다. 대성전 10간, 동서무 6간, 신문 5간, 취반청 3간은 고종 신미년에 군수 김상헌이 구기 윗쪽으로 60간허에 옮겨 짓고 명륜당 8간은 군수 민종수가 대성전 앞에 개건하였다.

◇향교신기서(鄕校新其序)
우리 문표(향교)를 옮긴지가 그럭저럭 여러번 되었다. 옛날에는 대대방에서 해상방으로 옮겼으니 작은 산등성 하나에 아래 위에 옮겨 짓기가 세번이나 된다. 지금의 문묘 터가 너무 우뚝하여 풍우를 가리지 못하기에 편편한 승지에 이봉을 하려고 원한지 오래 되었다. 그러나 읍세가 침체하고 상류가 왕성치 못하여 오랜 숙원을 풀지 못하고 있던 차에 다행히 이번 새로운 수령이 문묘의 퇴락을 걱정하고 사류들의 사기를 염려하여 그 진작의 방도를 강구 한지 반년 만에 비바람에 안전할 장소를 찾아 옮겨 짓게 되었으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 할 것이며, 어진군수의 도임이 늦었다 할 것이다. 오늘 이와 같은 때가 있을 줄 알았던고, 이리하여 지사를 맞아 길지를 잡으니 이 곳이 곧 척촉화동(癤薥花洞)이다. 척촉화동의 뜻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으며 이 곳은 구향교 북쪽 산줄기 한가운데로 맑은 물이 앞 뒤로 흘러 감싸고 진곡과 태창이 좌우에서 보필하고 있으며 아득히 기봉들이 솟아있고 내왕이 드문 탓으로 인적이 고요한 곳이니. 옛날에는 미처 몰랐다가 지금에야 알게 된 곳이다. 이로써 문화가 적막하던곳이 동면하여 글 공부에 힘 쓰는 곳이 되었으니 지나간 우리 선유들이 남긴 덕화가 아니겠는가. 이제 공사를 시작함에 있어 기쁜마음 금할 길이 없어 나의 어리석음을 헤아리지 않고 서(序)를 지어 후세에 남긴다.

英祖己卯菊令朔戊申 咸從後人 魚載泰 再拜謹序
<原 文>
鄕校新其序
吘我 文廟之移奉厥然數美上古自大垈坊移干海上坊而瘦殘一麓下上移建者凡三度矣今夫 殿字



◇간성향교이건본관정문
우리 고을의 문묘의 터가 우뚝하여 비람에 시달려 이제 허물어질 경지에 이르렀다. 그렇다고하여 황공하게도 위패를 한 곳에 모아 둘 수도 없는 일이기에 이 곳 선배들이 재실에 모여 서로 이르기를 오늘 문묘가 이지경에 이른 것은 그 동안 인정을 베풀지 않은데 연유한다면 그 상황대로 그럭저럭 몇 해를 넘겼더니 이번에 어진 군수가 우리 고을에 도임 하였으니 이번이야 말로 오랜 숙원을 얻었다. 문묘를 옮길 뜻은 벌써 여러해 전부터 가지고 있으면서도 되지 아니하여 이제는 허물어진 경지에 이르렀으니 이곳 사람으로 어찌 한심치 않겠는가. 전임 군수들은 문묘 옮기는데 관하여 얼의도 적었던데다 시작할 겨를과 알맞는 터마저 없으며 경비 또한 없다고 하여 왔다. 늘 이르기를 부귀빈천과 인물의 성패가 교지의 길흉에 달했다고 하니 이는 우리 고을에 해당되는 말이다. 이제 우리 문묘의 형편이 막다른 곳에 이르렀으니 길흉을 가릴것 없이 이곳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장풍향양한 곳에 창건하여 봉안케하면 될 것이니 바라건대 성주는 기지 취택에 유념하고 다른 문제는 염려치 말고 전보하기 바란다.



◇제사(정문에 대한 군수의 답서)
문묘의 터가 높아 비바람에 퇴락이 심하다는 걱정은 잘 알았으나 이전하는데는 터를 고르기가 쉽지 아니할 뿐더러 경비조달이 어려우며 더우기 이 일은 중대한 일임으로 경솔하게 시작하기 힘들다. 다시 한번 의견을 종합할 필요가 있고 또 금년 가을의 시절을 보아서 다시 협의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되니 그리 알길 바란다.



◇呈文(二次)
엎드려 바라건대,본군의 문묘 터가 높아 풍우에 시달림이 심하여 개건한지 40年이 못가서 대들보와 기둥이 씩고 기와가 깨어져 넘어질 지경에 이른 것은 우리 일군이 다 염려하는 바이다. 이러한 상황의 전후를 통촉하고 보살펴 재회 때와 봄 대제때에 제사를 받들어 보고 교시한 내용에 우리들은 황감무지함을 금 할 수 없었다. 그 가운데 물력의 책임은 지금 의논을 합하으니 지사를 청하여 터를 정하면 물력과 역사하는 것은 조금도 어려울 것이 없으며 춘경추수는 우리 백성들이 해야 할 일임으로 이것때문에 늦다는 염려는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민가의 신축에서는 봄에 시작하여 가을에 마치는 것이 상사이다. 본읍이 비록 작다고는 하나 백리나 되니 여기서 사람이 모이면 멀지 않아 준공을 볼 수 있을 것이니 이 고을 사람들의 심정이다 이 같이 간절하니 어찌 일시인들 늦출 수가 있겠는가. 춘경추수는 해마다 같은 일이니 읍민의 원을 들어 속히 영문을 보고하고 역사를 시작 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문묘를 이건한다는 것은 극히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이다. 본교의 기지가 드높아 풍우의 침식이 심하다는 의견에 대하여 관에서도 같은 의견이나 전후하여 옮겨 지은 것이 한두번이 아닌 것은 처음부터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지었던데 연유 한다. 막중한 건물을 수십년 만에 또다시 옮긴다는 것은 참으로 선성에 미안한 일이다. 옛말에 쉽게 지은 집이 오래 못간다는 말은 바로 이런 것을 이름이다. 이 큰 역사를 입담하듯이 쉽게 여기는 것은 중요한 일을 다루는 도러가 아니니 여러분이 지성으로 이 역사를 하려거든 시간이 즘 걸리더라도 먼저 재력과 기지를 정한 뒤 에 때를 맞추어 서서히 하는 것이 도리에 맞는 일이니 그렇게 알아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