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의 문화와 역사

Culture and History

문화재

2. 사찰(寺刹)

작성일
2025-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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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찰(寺刹)
가, 건봉사(乾鳳寺)
건봉사는 일제때의 행정구역으로 고성군 오대면 냉천리로 되어 있으나 지금은 거진읍 냉천리로 되어 있으며 세칭 한국4대사찰이라 이르던 대찰(大刹)이었으나 6.25동란 전후로 수백칸의 가람이 다 불타버리고 지금은 당시 건조물로 불이문 한칸과 능파교와 석계(石階), 초석(礎石), 부도(浮屠)등이 남아 있었으나 1990년도 대통령 공약사업으로 지표조사를 마치고 사지정비와 대웅전, 팔상전, 염불 만일원, 동지전, 명부전 등의 건물을 새롭게 복원했다. 「건봉사급건봉사말사사적(乾鳳寺及乾鳳寺末寺史蹟)」에 의하면 신라 법흥왕7년 (520년)에 아도화상(阿道和尙)이 고성현(古域縣)금강산 남록에 원각사(圓覺寺)를 창건하였고 그후 서봉사(西鳳寺)라 개칭하였다. 신라 법흥왕20년(560년) 보림암(普琳庵)과 반야암(般若應)을 창건했다. 신라경덕왕 17년 (578년)에 발징화상(發徵和尙)이 원각사를 중건하고 정신(貞信)․ 양순(良順)등과 함께 염불만일회를 베풀었는데 이것이 염불만일회의 효시가 되었다. 신라 말엽에 도선국사가 중수한 뒤 절의 서쪽에 봉형의 돌이 있다 하여 서봉사(西鳳寺)라 하였으며, 고려 공민왕7년(1353년)에 나옹화상(懈翡和尙)이 서봉사를 중수하고 건봉사(乾鳳寺)라 개명 하였으며 이후 오늘까지 그 이름을 쓰고 있다. 그러나 최근 건봉사를 창건한 아도화상과 고구려에 불교를 전래한 아도와의 동일인 여부와 함께 고구려 불교전례 시기가 신라의 불교 공인시기 보다 무려 154년전인 것으로 추정되는 설이 대두 되어 건봉사 창건시기에 대한 논란이 있다. 1464년 세조가 건봉사에 와서 이곳을 원당(願堂)으로 삼고 어실각(御臺閣)을 건립하였으며 논과 밭을 하사(下賜)했다. 또 어제어필(御製御筆)의 동참문(同參文)을 내려 왕실의 보호를 받는 큰 사찰이 되었다. 878년 4월3일 큰 산불이 일어나서 건물 3,183칸이 소실되었으나 이후 여러차레의 복원 작업에 의해 1911년 9개말사(末寺)을 거느린 31본산(本山)의 하나가 되었다.
신라시대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당(唐)에서 가지고 온 부처님의 치아(齒牙) 사리(舍利)를 통도사(通度寺), 월정사(月精寺)에 봉안 하였는데 임진왜란 때 왜병이 통도사의 사리를 일본으로 가져간 것을 선조 38년에 사명대사(泗溟大師)가 일본에 사행(使行)하였다가 다시 찾아와 이곳 건봉사에 봉안하게 되었다.



현종 14년 수흡도율(修洽道律)이 화주(化主)가 되어 1,200근(斤) 무게의 대종(大鑛)을 만들었고, 숙종 34년 능파교(凌波橋)를 만들었으며, 순조4년에 왕비 김씨가 금천량(金千兩)과 오동향로(烏銅香濾), 오동화준(烏銅花樽), 양산(陽傘) 등을 보내와서 보장(賓藏)하였으나 해방후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일제시대에 이르러 조선사찰령(朝鮮寺刹令)에 의해 건봉사(乾鳳寺)는 선교양종대본산(禪敎兩宗大本山)이 되었고, 말사(末寺)로 백담사(百漂寺), 신흥사(神興寺), 낙산사(洛山寺). 화암사(禾岩寺), 영혈사(靈穴寺), 멍주사(明珠寺), 수타사(壽陀寺), 조제암(鳥晴腐), 심곡사(深谷寺)를 거느리게 되었다.

◇건봉사(乾鳳寺)의 속암(屬庵)
보림암(普琳庵) : 신라 법흥왕 20년에 창건(創建)하여 보림선사(普琳祥師)가 중건하고 학림(鶴林)․용성(用成) 양사(兩師)가 중수하였다.
백화암(白華庵) : 신라문성왕(文聖王) 7년에 창건하였으며 일명 축성암(祝聖庵)이라고도 하며 석담(石潭)․몽로(夢盧) 양사(兩師)가 중건 하였다.
봉암암(鳳岩庵) : 고려 혜종(惠宗) 2년에 창건하고 해운(海雲)이 중수하였다
극락암(極樂庵) : 고려 혜종(惠宗) 2년에 창건하고 사미봉직(沙漏奉直)이 중건하였다.



백련암(白蓮庵) : 광무(光武)10년에 연호대사(蓮湖大師)이 창건하였다.
반야암(般若底, 廢腐) : 신라 법흥왕 20년에 창건하고 옛터만 남아 있다.
청연암(靑蓮庵, 廢庵) : 고려 혜종 2년에 창건하고 옛터는 사찰 서쪽 8km에 있다
대성암(大聖庵, 潛庵) : 고려 혜종 2년에 창건하고 옛터는 청상봉하(靑裳峰下)에 있다.
적명암(寂明腐, 廢庵) : 고려 의종(毅宗) 10년에 창건하고 혜능(惠能)이 중건하였으나 그 뒤 170년경에 폐암(廢庵)되었으며 옛터는 사찰의 남쪽 유선곡(遊仙
谷)에 있다.
보제암(菩提腐, 驃應): 고려 의종 15년에 창건하고 옛터는 서쪽 사찰의 동쪽 6km에 있다.
백련암(白蓮庵, 潑庵) : 고려 공민왕 8년에 창건하였다.

보문암(普門腐, 潑庵) : 고려 공민왕 8년에 창건하였다.
대원암(大願庵) : 고려 공민왕 8년에 창건하였고 비구승(比丘僧) 성윤(性允)정심(淨心)이 중건하였다가 폐암되었다.
일출암(日出庵, 廢庵) : 세조 10년에 창건하였다가 임진왜란 때 불탔다.
안양암(宋養庵, 〃) : 선조 39년에 혜능(惠能)이 창건하였다
동대암(東臺庵) : 숙종(肅宗) 34년에 창건하였다.
망해암(望海禱, 廢庵) : 순조 28년에 창건하였다.
은선암(隱禪庵), 영구암(靈龜庵), 서봉암(捿鳳庵)은 창폐(創廢)의 연대를 알 수 없다.

◇건봉사의 건물 (乾鳳寺 建物)
대웅전 9간, 팔상전 9간, 관음전 3간, 사성전 6간, 명부전 6간, 독성전 3간, 산신각 1간, 단하각1각, 진영각 6간, 범종각 1간, 봉저루 14간, 보제루 6간, 대지전 9간,
동지전 12간, 서지전 9간, 어실각 6간, 어향문 3간, 동고 3간, 낙서암 168간, 극락전 165간, 만일원 89간, 보안원 58간, 선원9간, 봉숙암 12간, 사무소 13간, 불이문 1간, 여관 13간, 장의고 3간, 성황당 2간, 수점실 2간, 계 642간.

◇부속건물(附屬建物)
보립암 9간, 봉암암 32간(산신각 1간입), 백연암 6간, 백화암 28간(산신각 1간입) 극락암 49간(산신각 1간입),계 124간

◇건봉사(乾鳳寺)토지
사사지(社寺地)      7,340평
답(沓)            507,883평
전(田)            164,527평
잡종지(雜種地)        298평
대(垈)              4,486평
계(計)            684,534평

◇임야(林野)
임(林)              1.804町
잡종지(雜種地)      4,624평

◇보물(寶物)
도금원불(鑛金願佛)
오동향노(烏銅香爐 小型)
철장(鐵徒)(이상 삼품은 사명당의 보물임)
대종(大鐘) : 현종 14년에 주성한 것으로 무게 1,700근(斤)
절감도(折襤圖)과 차거다반(磋거茶盤)(숙종(肅宗)의 하사품)
오동향노(烏銅香爐)(순조(純祖)의 왕대비 김씨의 하사품)

◇건봉사(乾鳳寺)의 탑(塔)
佛舍利塔 浦岩堂塔 崔氏舍利塔 月光竟子塔 月城堂塔 月時舍利塔 桂雲堂塔 舍柱花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