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의 문화와 역사

Culture and History

민속

-- 정월 ~ 2월

작성일
2025-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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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정월

① 설
설 차례는 군내 모든 가문에서 다 행하고 있다. 전에는 하루 전에 묵은 세배라 하여 집안이나 연장자를 찾아 다니면서 지난해의 인사를 했으나 지금은 이 묵은 세배는 하는 곳이 없다.
차례는 동고조 당내가 합동으로 조상 있는 집을 차례로 돌아다니면서 지내는 가문도 있고 한집 단위로 제집 조상의 차례를 그조상의 직손들만이 모여 지내는 가문도 있어 일정치 아니하다. 설의 절식은 떡국이고 차례도 떡국으로 지낸다. 차례가 끝나고 나면 세배풍속 세배를 한다. 세배풍속도 한 마을이 모여 합동으로 세배를 하는 마을도 있고 개별적으로 친척이나 동리의 노인을 찾아다니면서 하기도 한다.
설의 놀이로서의 윷, 연날리기, 널뛰기 등이 있으나 이 중 윷과 연날리기는 지금도 행하여지고 있고 널뛰기는 전과 같이 성행치 않고 있다. 정월 자일을 쥐의 날이라 하여 쥐주둥이를 볶는다는 뜻에서 콩을 볶아 먹었으나 고노들의 말에 의하면 요즈음은 일진(日辰)도 거의 잊고 있어 이런 행사는 다 없어졌다고 한다. 4,50년 전에는 설에는 보름까지를 정초라고 하여 명절 기간으로 쳐서 농가에서는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놀았으나 근년에는 설 3일 정도로 고작하여 명절기분을 내고 있다.

② 대 보 름
월력을 중심으로 생활하던 시대 즉 음력시대에 있어서 정월 보름인 상원은 한해의 시발로 여겨왔으므로 농촌에서는 이날부터 농사가 시작된다고 하여 정월 보름달 새벽에 퇴비를 한짐져서 자기 논에 가져다 놓은 습속이 있을 정도로 이 날은 농경속에서는 중요한 날로 되어 있고 2월에서 12월까지 15일은 보름이라고 하지마는 정월은 대보름이라 하여 다른 달의 보름과 구별하고 있다. 따라서 이날은 연중 어떠한 절일보다 특이한 민속이 많은 날로 고성지방에서도 역시 그러하다. 대보름의 절식은 약밥이다. 감, 대추, 밤 등의 재료가 많이 들어가므로, 오곡밥으로 대식하기도 하나 아직도 약밥을 하는 집이 있고 대보름 차례를 행하는 집도 혹 있다고 교동리의 함병준씨는 말하고 있다.



대보름에는 소복과 금기의 속이 가장 많다. 보름달은 맑게 지나면 1년중 무재하다 하여 14일에 대청소를 하고 이날 밤은 방마다 불을 밝힌다. 이 날 밤을 자면 눈썹이 희여진다고 하여 잠자지 아니하는 증속이 있고, 달부름이라 하여 일년의 한습(旱濕)을 점쳐 보는 행사도 한다. 수수대공에 콩을 12개 넣어 14일 저녁에 물에 잠궜다가 15일에 건져서 그 불은 도에 따라 그 달의 한습(旱濕)을 점친다. 즉 두번째의 것이 많이 불었으면 2월은 비가 많이 오고 네번째가 불지 않았으면 4월은 가문다고 한다
보름날 아침에 귀밝이 술을 먹는다. 이 술을 먹으면 연중 귀가 밝다고 한다.
부스럼 씹기도 한다. 14일 저녁에 호도, 백자, 밤 등 소리나는 과일을 준비 하였다가 15일 눈 뜨자 '부스럼 씹는다'라하고 소리나게 깨물면 연중 부스럼이 나지 아니한다는 속신이 있다. 이때 다른 말을 하지 않고 하여야 효과가 있다고 한다.
더위팔기도 보름의 풍속으로 상대의 이름을 불러 대답하면 '내 더위 사라'라고 한다. 이것을 많이 팔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아니한다고 한다.
이 고장에서 하였던 액막이는 여러 종이 있다. 백지에 성명과 생년월일을 써서 백반 세 접시를 담아 강물에 띠우는 어촌식도 하고 작은 허수아비를 만들어 만월을 향하여 세워두고 축원하는 액막이도 행하여지고 있으며 어촌에서는 해안에서 이 행사를한다.
망월(望月)은 지금도 하고 있고 동리마다 망월하는 산이 따로 있다. 고성군은 해안선이 있기 때문에 수평선이 보이는 산에서 망월을 한다. 횃불을 들고 망월을 하되 군중 속에서 가장 먼저 망월을 한 사람은 그해 길한 일이있고 총각은 장가를 가게 된다는 속신이 있어 먼저 보려고 한다. 달이 뜨는 위치 달의 빛에 의하여 현재 농사의 흉풍을 점친다.
귀신달굼도 보름 속습의 하나이다. 16일은 귀신날이라 하여 일몰 즉시 대문 앞에 귀신이 꺼리는 냄새나는 물품을 태운다. 천조각, 머리카락 등을 태워 귀신이 집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신은 다 엎어 놓는다. 신을 엎어놓지 아니하면 신어 보고 맞으면 신고 가고 귀신에게 신을 빼앗긴 사람은 신재(身災)가 있다고 한다

③ 입춘(立春)
입춘은 빠르면 12월에 있고 늦으면 정월에 있다. 입춘에는 임춘대길이란 글을 씨서 기둥에다 붙였으나 지금은 입춘 붙이는 집은 거의 없고 다만 천정에 '太歲甲子萬事亨通(태세감자만사형통)'이라는 것은 아직도 더러 써서 붙인다고 한다.

④ 걸 립(乞粒)
정월에 걸립을 하는 부락이 있다. 교동리 함병준씨에 의하면 이곳에서는 이 걸립패를 남사당패라고도 이르나 기예(技藝)를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아니고 동민들로 구성되어 있다. 장대에 성황신을 모신 성황대를 앞세우고 풍물을 울리며 집집마다 찾아가서 축원을 한다. 이 축원은 좌당이 하는 것은 아니고 걸립패 중에서 말 잘하는 사람이 맡아한다. 풍물을 울리고 지신을 밟는다고 마당을 몇바퀴 돈 뒤에 성황대를 세워 놓으면 가세에 따라 백미를 소반에 받쳐 주인이 성황대 앞에 갖다 놓으면 주재자가 입심 좋게 축원을 하고 주인은 절을 한다. 끝나고 나면 음식대접을 받고 백미는 걸립패가 가지고 간다. 이렇게 하여 모은 백미는 단체의 일년비용으로 쓰고 남은 것은 풍물을 사는데 쓰고 있다.

나.2월

① 풍 신(風神)
농어촌의 생활이 바람과 깊은 관계가 있어 바람이 신을 섬기는 속신이 풍신행사(風神行事)다. 2월1일에 풍신이 내려왔다가 15일 풍신이 올라간다고 한다. 2월1일에 오곡밥을 지어놓고 정화수 한동이를 떠다 풍신에게 제를 올리는데 이 지방에서는 주부가 이것을 담당한다. 이 보름 동안은 풍신이 내려와서 있다고 해서 집안의 모든 일을 삼간다. 어촌은 농촌보다 풍신제가더 성행하였으나 지금은 찾기 어렵게 되었다.

② 좀 생 날
2월6일은 좀생이 보는 날이다. 좀생은 성군(星群)이라 이때가 음력으로 6월 즉 상순이므로 이즈러진 달이 초저녁에 사천(四天)에 나타난다. 이때 좀생이라는 성군(星群)과 달과의 거리로 흉풍을 점치는 것인데 거리가 가까우면 그해는 흉년이 들고 거리가 멀면 풍년이 든다.

③ 한 식(寒貪)
청명 다음날 즉 동지에서부터 105일 되는 날이 한식으로 혹 2월에 들기도 하고 혹 3월에 들기도 하는 절일의 하나로 속설(俗說)에 '이월 한식에는 꽃을 보나 삼월 한식에는 꽃을 못 본다'고 하여 계절과 관계를 맺고 있다. 지금은 한식 차례를 지내는 가문이 적어졌다하여 이 시기에 선조의 묘의 사초(莎草)를 손질하는 습속은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