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3.산업 · 경제
작성일
2025-07-26
조회
22
고성군의 주된 생산물로는 쌀 ․보리 ․콩 ․밤 ․목재 ․마포(麻布)․소․수정(水晶)․ 석탄․금 ․소금 기타 각종 생선들이 있었다.
① 농업 : 1939년 현재 고성군의 경지면적은 일모작 4,564정보, 이모작 45정보로 일모작이 압도적으로 높다. 총경지면적은 4,609정보이고 이중에서 밭이 4,423정보를 차지하고 있다. 농업호수는 전업이 5,798호, 겸업이 704호로 총 6,502이다. 영농별 농업호수를 살펴보면 자작농 1,520호, 소작농 3.131호. 자작겸 소작 2,593호로 총 7,244호로 되어 있다.
② 축산업 : 1939년말 현재 고성군의 가축 및 가금(家禽)수는 소 5,212두 면양 106두, 산양 19두, 돼지 4,972두, 닭 8,661수, 토끼 86수 등으로 집계되어 있다.
③ 수산업 : 1935년의 기록에 의하면 강원도 동해안 일대는 어장의 보고(寶庫)였으나 어선의 피난, 계적(繫笛)에 쓰일 항만이 제대로 없을 뿐만 아니라 육상교통, 해상운수가 아울러 제대로 갖추어 지지 않아 어업발전을 기하지 못하였다. 그런 가운데서도 주문진(注文津)․정라진(汀羅津)․묵호진(墨湖津)․후포(厚浦) 및 고저(庫底)의 축항이 완성되고, 속초(束草)의 축상도 완성단계에 이르러 발전의 계기를 찾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동해안 철도가 고성군 간성까지 개통되게 됨으로써 육상교통이 편리해짐에 따라 고성지역도 수산업의 발전을 가져오게 되었다. 1935년 현재 고성군의 어항으로는 장전(長箭)․거진(巨津)․봉수리(熢燧里)등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장전항은 천연의 양항으로서 대표적인 어항이었다.
일제시대 들어 총독부는 나름대로 어구(濕具)개량, 어법(漁法)의 실습지도에 힘써 1911년 경만해도 10여종에 불과하던 어구가 1934년에는 40여종에 이르고 또한 극히 정교해졌다. 대표적인 구인 어망의 종류를 보면 대첩망(大諜綱)․어망(魚綱)․인어망(人魚綱)․소태망(小台綱)․낙망(落網)등이 있다. 고성군 해안지역은 난류와 한류가 상호교차하는 해역이어서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각종 생선이 잡혔다. 대표적인 어종만도 60여종에 달했는데 특히 정어리․ 명태․주치 등이 많이 어획되었다. 당시 고성군에는 고성면 봉수리에 고성어업조합(高域漁業組合)이 있었고, 오대면 거진리에 거진어업조합(巨津漁業組合)이 있었다.
한편 일제시대에는 도내에 상당수의 일본인 어부가 조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 최초의 집단적 어업이주가 고성군에서 이루어졌다. 즉 1934년 고성면 봉수리에 복강현(福岡縣)으로부터 7호가 이주, 정착했던 것이다. 이들은 해산조합(海産組合)을 만들어 어획, 해산물 제조업, 기타 어류의 운반업 등에 종사했는데 1935년이후 개인이 주자들도 줄을 이어 고성군을 비롯한 동해안 전연안에서 일본인 어부를 목격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나진리(羅津里)에 세워진 조선어업합자회사 경영의 어대첩제(魚大諜製)어장은 동양제 1의 어장으로 유명하였다.
① 농업 : 1939년 현재 고성군의 경지면적은 일모작 4,564정보, 이모작 45정보로 일모작이 압도적으로 높다. 총경지면적은 4,609정보이고 이중에서 밭이 4,423정보를 차지하고 있다. 농업호수는 전업이 5,798호, 겸업이 704호로 총 6,502이다. 영농별 농업호수를 살펴보면 자작농 1,520호, 소작농 3.131호. 자작겸 소작 2,593호로 총 7,244호로 되어 있다.
② 축산업 : 1939년말 현재 고성군의 가축 및 가금(家禽)수는 소 5,212두 면양 106두, 산양 19두, 돼지 4,972두, 닭 8,661수, 토끼 86수 등으로 집계되어 있다.
③ 수산업 : 1935년의 기록에 의하면 강원도 동해안 일대는 어장의 보고(寶庫)였으나 어선의 피난, 계적(繫笛)에 쓰일 항만이 제대로 없을 뿐만 아니라 육상교통, 해상운수가 아울러 제대로 갖추어 지지 않아 어업발전을 기하지 못하였다. 그런 가운데서도 주문진(注文津)․정라진(汀羅津)․묵호진(墨湖津)․후포(厚浦) 및 고저(庫底)의 축항이 완성되고, 속초(束草)의 축상도 완성단계에 이르러 발전의 계기를 찾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동해안 철도가 고성군 간성까지 개통되게 됨으로써 육상교통이 편리해짐에 따라 고성지역도 수산업의 발전을 가져오게 되었다. 1935년 현재 고성군의 어항으로는 장전(長箭)․거진(巨津)․봉수리(熢燧里)등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장전항은 천연의 양항으로서 대표적인 어항이었다.
일제시대 들어 총독부는 나름대로 어구(濕具)개량, 어법(漁法)의 실습지도에 힘써 1911년 경만해도 10여종에 불과하던 어구가 1934년에는 40여종에 이르고 또한 극히 정교해졌다. 대표적인 구인 어망의 종류를 보면 대첩망(大諜綱)․어망(魚綱)․인어망(人魚綱)․소태망(小台綱)․낙망(落網)등이 있다. 고성군 해안지역은 난류와 한류가 상호교차하는 해역이어서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각종 생선이 잡혔다. 대표적인 어종만도 60여종에 달했는데 특히 정어리․ 명태․주치 등이 많이 어획되었다. 당시 고성군에는 고성면 봉수리에 고성어업조합(高域漁業組合)이 있었고, 오대면 거진리에 거진어업조합(巨津漁業組合)이 있었다.
한편 일제시대에는 도내에 상당수의 일본인 어부가 조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 최초의 집단적 어업이주가 고성군에서 이루어졌다. 즉 1934년 고성면 봉수리에 복강현(福岡縣)으로부터 7호가 이주, 정착했던 것이다. 이들은 해산조합(海産組合)을 만들어 어획, 해산물 제조업, 기타 어류의 운반업 등에 종사했는데 1935년이후 개인이 주자들도 줄을 이어 고성군을 비롯한 동해안 전연안에서 일본인 어부를 목격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나진리(羅津里)에 세워진 조선어업합자회사 경영의 어대첩제(魚大諜製)어장은 동양제 1의 어장으로 유명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