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의 문화와 역사

Culture and History

역사

++제2절 선사유적 · 유물

작성일
2025-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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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절 선사유적,유물
신석기시대의 유적으로는 죽왕면 문암리와 간성읍 동호리에서 최근 확인되었다. 특히 문암리 유적에서는 토기의 의벽에 점토를 덧대어 무늬를 만든 융기문(隆起文)과 세로로 새긴 점렬 (點列) 무늬, 점렬문과 융기문의 복합 등 다양한 회갈색 계통의 토기들이 채집되었는데 이들 그릇의 모양은 주로 발형(鉢形)이며, 바닥은 모두 편편하다. 이러한 종류의 토기는 이 유적보다 남쪽에 위치하는 양양 오산리 선사유적(사적 제394호)에서 다량 출토된 바 있고 한반도 동 북지방의 서포항(西浦項), 강상리(江上里), 농포동(農圃洞) 유적과 서북지방의 신암리(新岩 里), 토성리(土城里) 유적 등에서도 출토된 바 있어 이들 지역간의 교류관계, 유적의 입지환 경 , 주거지의 구조, 토기 제작기술 등을 상호 비교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유적이라 할 수 있으며 , 북한 지역과 남한 소재 신석기 문화의 전파과정과 경로를 밝혀주는 좋은 자료라 할 수 있다.
동호리 유적에서는 물고기뼈무늬, 평행선무늬와 같은 눌러찍은 무늬가 새겨진 황갈색 및 적갈색을 띤 토기와 간돌도끼 등 30여점이 지표 채집되어, 신석기시대 집단주거지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 유적의 형성시기는 문암리 유적이 기원전 5천년 ~4천년, 동호리 유적은 기원전 3천년 ~ 2천년 경의 것으로 비정해 볼 수 있다.
1961년 현내면과 오대면에서 각각 1개씩의 지석묘(支石墓)가 발견되었다. 1기는 북방식(北方式)이며, 다른 1기도 받침돌이 본래 있었으나 조사 당시에는 탱석(撑石)만 땅 위에 놓여 있었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는 일찍이 용범(溶範)을 비롯한 여러 유물이 발견 되었으며 다량의 석검(石劍)파편과 무문토기편(無紋土器片)도 발견되었다. 또한 1978년부터 시행한 동해안에 대한 지표조사에서는 6기의 지석묘가 보고되었다. 또 1995년 고성군과 강릉대학교박물관 조사에 의해 용촌리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와 산학리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 죽정리 청동기 시대 유물산포지, 화포리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와 화포리와 문암리의 초기철기시대 유물산 포지가 각각 확인되었고, 죽정리 1반의 고인돌 6기와 죽정리 2반 고인돌 5기, 화포리 고인돌 8기, 자산리 고인돌 등이 발견되었다.
청동기시대 유적으로는 토성면 용촌리 입구, 현내면 산학리, 죽왕면 삼포리?인정리, 간성읍 동호리, 거진읍 원당리 유적이 있다. 이들 유적은 대부분 바닷물의 작용에 의해 형성된 석호(潟湖)나 과거 석호였던 곳의 주변 야산(해발 20 ~ 50미터) 기슭이나 능선부에 주로 분포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 지역 청동기시대 사람들은 이와 같은 석호 주변에서 생활하였음이 확인되었다.



이들 유적에서는 청동기시대의 동북지방 대표적 토기인 공렬(孔列) 토기가 채집되었고, 또한 무문토기들과 돌화살촉 ․ 돌도끼 ․ 방추차 ․ 어망추 ․ 반달모양 돌칼 ․ 석검 등 많은 양의 유물들이 수집되어 유적의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특히 화진포 호숫가에 자리한 원당리 유적과 죽정리 유적에서는 신석기 유적에서 볼 수 있는 빗살무늬 토기와 갈판(곡식을 빻는 돌 연모) 등이 무문토기와 함께 나오고 있어 신석기에서 청동기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시기의 문화특성을 규명하여 주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고인돌 유적으로는 현내면 죽정리 1반 및 2반, 거진읍 화포리 찻골, 거진읍 자산리, 현내면 죽정1리 등이 있다. 초기 철기시대유적으로는 거진읍, 화포리, 죽왕면 문암1리 유적이 확인되었다. 고분유적으로는 현내면 명파리 , 죽정리 , 토성면 천진리 , 죽왕면 공현진리 등의 유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