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효열부인 이씨(孝烈夫人 李氏 본관 : 慶州 1876년 10월 6일생)
작성일
2025-07-26
조회
11
강원도 고성군 (당시 양양군) 죽왕면 마좌리
이씨는 익제 이제현(益齋 李齋賢)의 후손으로 정기(正基)의 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온순하고 손재주도 뛰어났다. 약년 15세에 중추원 의관(中樞院 議官)을 지낸 주병학(朱秉學 본관 : 新安)에게 출가하여 시부모봉양(媤父母奉養)과 부군을 받드는데 부도(婦道)를 어김없이 다하였으므로 "현부(賢婦)"라고 칭송받았다. 1916년 (丙辰) 봄에 부군이 중병에 걸렸기에 가세와 원근(遠近)을 불구하고 모든 양약을 구하여 시탕(侍湯)함에 정성을 다하였으며 병이 완쾌하기를 하늘에 맹세 하였으나 이 해 병진년 7월7일 사망하였기에 함께 따라 죽을 것을 맹세하였으나 자식의 양육 때문에 억제하고 부군의 습(襲)과 염을 부인이 직접 손을 대는 등 襄禮(초상)를 무사히 치렀다. 혈육인 젖먹이도 잘 키워 후일 대를 계승토록 양육함에도 힘을 다하였다.
비통으로 3년상에도 예절을 극진히 하였고 그후에도 일상 흰 옷을 입고 비창(悲愴)함을 잊지 않았다.
부인은 나이 56세에 사망하였는데 평생 부도를 다하였으며 그 재능있는 솜씨는 옛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을 정도였다.
이에 미적(美蹟)을 밝혀 행실을 영원히 선양하고자 한다.
이씨는 익제 이제현(益齋 李齋賢)의 후손으로 정기(正基)의 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온순하고 손재주도 뛰어났다. 약년 15세에 중추원 의관(中樞院 議官)을 지낸 주병학(朱秉學 본관 : 新安)에게 출가하여 시부모봉양(媤父母奉養)과 부군을 받드는데 부도(婦道)를 어김없이 다하였으므로 "현부(賢婦)"라고 칭송받았다. 1916년 (丙辰) 봄에 부군이 중병에 걸렸기에 가세와 원근(遠近)을 불구하고 모든 양약을 구하여 시탕(侍湯)함에 정성을 다하였으며 병이 완쾌하기를 하늘에 맹세 하였으나 이 해 병진년 7월7일 사망하였기에 함께 따라 죽을 것을 맹세하였으나 자식의 양육 때문에 억제하고 부군의 습(襲)과 염을 부인이 직접 손을 대는 등 襄禮(초상)를 무사히 치렀다. 혈육인 젖먹이도 잘 키워 후일 대를 계승토록 양육함에도 힘을 다하였다.
비통으로 3년상에도 예절을 극진히 하였고 그후에도 일상 흰 옷을 입고 비창(悲愴)함을 잊지 않았다.
부인은 나이 56세에 사망하였는데 평생 부도를 다하였으며 그 재능있는 솜씨는 옛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을 정도였다.
이에 미적(美蹟)을 밝혀 행실을 영원히 선양하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