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의 문화와 역사

Culture and History

지명

12.화진포와 고총서낭

작성일
2025-07-26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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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화진포와 고총서낭

옛날 지금 호수된 화진포에는 이화진이라는 시아버지와 착한 며느리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화진이라는 영감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 마을에서 성질이 고약하고 구두쇠로 소문나 있었다. 어느날 인근에 있는 건봉사 스님이 와서 "시주 좀 하십시오"하니 이화진 영감은 하인을 시켜 처음에는 좁쌀 한홉 정도를 주었다. 스님은 "고맙습니다"하면서 염불을 하고 돌아 갔다. 그 후 3년이 지나 스님이 또 "시주 좀 하십시오'하니 좁쌀 한숟가락을 주었다. 이번에도 역시 "고맙습니다"하면서 염불을 외며 가세의 번창을 기원하였다. 그후 3년이 지나 스님이 또 "시주 좀 하십시오"하고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외우니 자꾸 찾아오는 스님이 밉기도 하고 주는 곡식을 아깝게 여기던 이화진 영감은 외양간으로 가서 소똥을 한삽 퍼내 "에라, 우린 시주 할 께 없으니 이거나 가져가라"하고 쏟아 부으니 스님은 "감사 합니다"하고 장삼자락을 벌려 받았다. 스님은 소똥이 담겨진 장삼자락을 싸 쥐고는 "복 많이 받으십시오"하고 돌아 가는 것이었다. 부및에서 일하면서 이 광경을 지켜 본 이화진의 착한 며느리는 스님에게 동냥을 대신해 소똥을 퍼주는 시아버지의 행동이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하고 얼른 광에 들어가서 쌀을 몇 되박을 행주치마에 싸서 스님을 쫓아 갔다. 스님은 잰 걸음으로 저만치 가고 있는데 며느리가 "대사념! 대사님!" 하고 불러도 뒤도 돌아 보지 않은 채 그냥 가는 것이었다. "우리 시아버지의 죄를 용서하시고 대신 이 시주를 받아 가세요."해도 스님은 아무소리 없이 산록으로 올라 갔다. 화진포의 높은 산록 고총서낭이라는 곳에서 스님은 멈춰서서 며느리를 돌아다 보며 "왜 나를 자꾸 쫓아오느냐?"고 말했다. 며느리는 "우리 시아버지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제가 주는 이 시주를 받아 가세요'하고 쌀을 내주니 그걸 받지 않고 "고개를 돌려 살던 집을 보라.'라고 스님이 얘기했다. 며느리가 집을 돌아보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가 살던 집과 텃밭은 오간데 없고 시피런 개(호수)가 되고 만 것이다. 다시 스님을 돌아보니 스님 역시 종적을 감춘 것이다.
며느리는 갑자기 오갈데가 없어진 것과 순간에 일어난 일이 너무 허망하고 애통하여 허리띠를 풀어서 목을 매어 죽었다. 그후 어찌 된 일인지 온 나라와 이 지방에 큰 홍수가 나고 농사가 안돼 흉년이 들고 전염병까지 돌아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것이 이상한 일이 벌어겠다. 그것은 이화진의 논과 집이 물바다가 된 것과 관련이 있다는 소문이 나더니 결국 이 동네 나뭇꾼이 나무하러 갔다가 이화진의 며느리가 목 메달아 죽은 시신을 발견해 알아보니 착한 며느리가 애통한 심경으로 자살한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동네사람들이 그곳에 이름없는 묘를 만들고 서낭을 지어 일년에 한 번씩 서낭굿을 해준 다음부터는 농사도 잘되고 전염병도 사라졌다는전설이 전해 온다. 결국 화진포는 이화진의 논인데 그렇게 못되게 굴어서 벌을 받고 호수가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