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2. 향로봉(香爐峰)과 진부령(陳富嶺)
작성일
2025-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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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향로봉(香爐峰)과 진부령 (隙富嶺)
위치 :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홀리향로봉은 표고 1.293m로 고성군과 인제군, 회양군 등 3개군의 경계를 접하고 있는데 신라시대에 가리라봉(迦里羅峰)라고 불리웠으며. 수성지의 기록에는 마기라산(麻耆羅山)이라 기록되어 있고 큰 가뭄때는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고한다.
이산을 따라 이어지는 고진동계곡, 진부령계곡, 머내골, 제추골, 용추골 등은 품광이 빼어나고 골짜기의 운무는 가히 선경에 이른다. 또 골짜기 마다 기암절벽이 극치를 이루고 있는 이곳은 최근 학술조사에서 희귀한 생물이 많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생태계보존지역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고성지방에서 영서쪽으로 통하는 관문은 진부령(陳富嶺)이다. 진부령은 수성지 기록에 의하면 '영서로 통하는 소로가 매우 험하고 좁아서 1632년(인조 10년, 王申) 관에서 모집한 역승(役僧)이 처음 개통한 고개인데 통행이 적고 비교적 순탄한 길이어서 통행이 용이하나 겨울에는 눈으로 길이 막힌다"라고 적고 있다.
표고는 625m로 정장히 높은 고개는 아니지만 진부령의 가을에는 온 산과 계곡이 불이 붙는 듯 온통 붉게물든 단풍으로 유명하다. 진부령도로는 1981년 대통령령으로 지방도에 국도로 승격되면서 44.6km 도로에 대한 확장공사가 이루어져 이 지방의 농수산물 도시운송과 고성지방을 찾는 관광객의 주요 이동로로 이용되고 있다.
진부령 정상에는 '진부령(障富嶺)' 표석이 세워져 있고 1957년 7월 15일 세운 향로봉지구 전적기념비(香濾峰地區戰鑛紀念碑)가 있다. 비문의 개요는 1951년 3월 7일부터 그해 6월 9일에 이르기까지 우리국군이 중공군과 싸워 대승하여 마침내 설악산(雪嶽山)과 향로봉지구를 점령했다는 피어린 전적지임을 말해 주고 있는데 중공군의 불법 침입으로 이곳에서 꽃다운 젊은 청년들이 숨져간 것이다. 이들이 여기서 뿌린 피는 헛되지 아니하여 155마일 휴전선 지도를 보면 전 휴전선 중에서 가장 북상해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며 한치의 땅이라도 되찾아야겠다는 충성스런 발로가 고귀한 희생을 치뤘던 곳이다. 이곳을 지나는 길손은 애국의 상징이 곧 여기에 있고 조국에에 대한 거룩한 정신의 상징임을 느껴 옷깃을 여며 겸허한 마음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어야 할 것이다.
또 이 전적지 우측에 설화희생순국충혼비(雪禍犧牲殉國忠魂碑)가 있다. 이 고장은 옛부터 통고지설(通高之雪)이라 하여 유난히 눈이 많이 오는 곳이다. 1956년 2월 중순부터 3월초순까지 영동지방일대에 폭설이 내렀다. 그때 이곳 향로봉에서 전선을 지키는 우리국군 용사들이 참변을 당했으니 그 얼마나 비통한 일인가? 이 비통하게 죽은 고인들의 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세운 비가 이곳에 있다. 그간 세월의 풍상으로 비석의 기단이 노후 훼손 됨에 따라 1997년 일부 비석의 기단을 보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