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
-- 가. 고성군의 역사․지리적 환경
작성일
2025-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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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을 끼고 해안지대와 평야지대, 산악지대로 구성되어 있는 고성군은 강원도 18개시․ 군중의 하나로 오랜 연혁 속에서 읍호의 개변과 인접군과의 이합이 상당히 심했던 지역이기도 하다. 고대에는 예(穢)의 땅이었다가 한(漢)나라 때에는 임둔군(臨屯郡)에 딸리었으며, 고구려(高句麗)때 달홀(達忽)이 되고 그 이후 상당한 변천을 거쳐 현재의 고성군에 이른다. 그리고 요즈음의 고성군은 1919년 합군(合郡)하기 이전에는 고성군과 간성군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 고성군과 간성의 연혁은 다음과 같다(崔承洶, 1982, p.463). 고성군은 원래 고구려의 달홀(達忽)로 진흥왕 29년에 달홀주(達忽州)로 삼고 군주를 두었으며 경덕왕 때문에 지금의 이름인 고성으로 고치고 군(郡)을 두었다.
고려 때에 현령(縣令)으로 하고 조선시대에서도 그대로 하였다가 세종 때에 군(郡)으로 고쳤다. 군명으로는 달홀(達忽) 또는 풍암(豊巖)이라고도 하였다.
간성은 원래 고구려의 수성군(䢘城郡)으로 가라홀(加羅忽)이라고도 하였다. 신라시대에는 수성군(守城郡)으로 고쳤으며 고려에서 한때는 수성(水城)으로 부르다가 지금 이름인 간성
(杆城)으로 고치고 또 한때는 현(縣)으로 강등하여 령(令)을 두었다. 후에 승격하여 다시 군으딘 하고 고성까지를 겸임하였다가 1390년(恭讓王 원년)에 다시 분군(分郡)하여 고성과 간성의 두 군으로 하였고 조선시대에는 두 군(郡) 그대로 두었다. 군명은 수성(䢘城), 가홀라(加忽羅), 수성(守械) 등이 쓰이고 있다.
이와 같은 곡절을 겪다가 고종 32년(1895년)에 강릉부의 관할이 되고,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간성군에 편입되어 군내(郡內), 오대(梧垈), 죽왕(竹暖), 고성(高城). 신북(新北), 서면(西面), 수동(水洞), 토성(土城), 현내(縣內)의 9개 면을 관할 하다가 1919년에 간성군이 폐지되어 토성과 죽왕의 두 면은 양양군(裏陽郡)으로 넘어가고, 그 나머지 7개 면은 고성군으로 되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 38도선 이북에 편입되어 공산치하에 있다가 1954년 10월 21일에 간성, 현내, 거진 세 면이 민정으로 넘어오고 그 나머지 면은 민간인의 입주가 금지 되었다. 1963년 1월 1일에 양양군으로 편입되었던 토성, 죽왕 두 면을 도로 찾은 현재의 고성군은 북으로 휴전선을 경계로 하고 있고, 서쪽은 인제군, 남쪽은 속초시와 접하고 있으며 거진과 간성의 2읍과 현내, 죽왕, 토성의 3개 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2읍․3면은 5만여의 인구를 포함하고 있으며, 이중에서 24% 정도의 인구는 어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나머지는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주민들은 거의 토착민인 반면에 어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외지인(주로 함경도에서 남하하여 이주한 사람들)이라 한다.
고려 때에 현령(縣令)으로 하고 조선시대에서도 그대로 하였다가 세종 때에 군(郡)으로 고쳤다. 군명으로는 달홀(達忽) 또는 풍암(豊巖)이라고도 하였다.
간성은 원래 고구려의 수성군(䢘城郡)으로 가라홀(加羅忽)이라고도 하였다. 신라시대에는 수성군(守城郡)으로 고쳤으며 고려에서 한때는 수성(水城)으로 부르다가 지금 이름인 간성
(杆城)으로 고치고 또 한때는 현(縣)으로 강등하여 령(令)을 두었다. 후에 승격하여 다시 군으딘 하고 고성까지를 겸임하였다가 1390년(恭讓王 원년)에 다시 분군(分郡)하여 고성과 간성의 두 군으로 하였고 조선시대에는 두 군(郡) 그대로 두었다. 군명은 수성(䢘城), 가홀라(加忽羅), 수성(守械) 등이 쓰이고 있다.
이와 같은 곡절을 겪다가 고종 32년(1895년)에 강릉부의 관할이 되고,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간성군에 편입되어 군내(郡內), 오대(梧垈), 죽왕(竹暖), 고성(高城). 신북(新北), 서면(西面), 수동(水洞), 토성(土城), 현내(縣內)의 9개 면을 관할 하다가 1919년에 간성군이 폐지되어 토성과 죽왕의 두 면은 양양군(裏陽郡)으로 넘어가고, 그 나머지 7개 면은 고성군으로 되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 38도선 이북에 편입되어 공산치하에 있다가 1954년 10월 21일에 간성, 현내, 거진 세 면이 민정으로 넘어오고 그 나머지 면은 민간인의 입주가 금지 되었다. 1963년 1월 1일에 양양군으로 편입되었던 토성, 죽왕 두 면을 도로 찾은 현재의 고성군은 북으로 휴전선을 경계로 하고 있고, 서쪽은 인제군, 남쪽은 속초시와 접하고 있으며 거진과 간성의 2읍과 현내, 죽왕, 토성의 3개 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2읍․3면은 5만여의 인구를 포함하고 있으며, 이중에서 24% 정도의 인구는 어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나머지는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주민들은 거의 토착민인 반면에 어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외지인(주로 함경도에서 남하하여 이주한 사람들)이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