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
-- 열식(梧列式)이 있는데 오봉리는 모두가 복열식 ....
작성일
2025-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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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식(梧列式)이 있는데 오봉리는 모두가 복열식 가옥으로 되어 있다. 이들 가옥을 그 공간구조에 따라 분류하면 몸채가 복열 6칸으로 되어 있는 것, 복열 6칸의 몸채의 마구간, 곡간등 2, 3칸의 소매채가 붙어 있는 것, 몸채가 복열 8칸으로 되어 있는 것, 복열 8칸의 몸채에 마구간, 곡간 등의 소매채가 붙어 있는 것의 4종으로 나눌 수 있다. 이들 중 복열 6칸 가옥의 공간구조는 부엌 2칸 다음에 앞쪽으로 한칸의 마루가 있다. 이 마루는 부엌과 벽이나 문이 없이 그대로 통하게 되어 있고 마루뒤, 부엌에 잇달아 안방이 있다. 안방을 앞쪽으로는 마루와의 사이에 문이 달려 있고 부엌과는 벽으로 막혀 있다. 마루 옆에 전면으로 사랑방 한칸이 있고 이 밖 뒷쪽을 벽으로 막아 웃방 또는 도장방이 있다. 웃방은 사랑과는 벽으로 막혀 있어 서로 통할 수 없게 되어 있으나 웃방과 안방은 통할 수 있는 문이 있다. 6칸 복열식 가옥에 우사나 곡간이 달렸을 때는 반드시 부엌 쪽에 달려 ㄱ자형으로 되어 있다. 기능별로는 안방은 주부의 생활공간이며 동시에 전가족이 가장 많이 쓰고 마루는 가족전체의 공동공간이다. 사랑방은 남자주인의 거처로 남자 외객이 여기에 머무르며 웃방은 아이들의 방으로도 쓰고 형편에 따라 창고의 역할도 한다.
8칸 복열식에 있어서는 부엌 2칸이 앞뒤로 터져 있고, 앞 쪽으로 2칸의 마루가 있으며 그끝에 사랑방 1칸이 있다. 마루 뒷쪽 부엌과 벽으로 이어져 있는 방이 안방이고 그 다음이 도장이다. 그 옆 사랑방의 뒷쪽에 웃방이 달려 있으며 웃방은 사랑방과 장지로 개폐되게 되어 있다. 주옥의 기능은 6칸 복열과 같고 다만 마루가 1칸 더 크며 웃방이 하나 더 있는데 이 방은 아이들의 방이다. 이 가옥 양식에 우사나 곡간이 달렸을 때는 6칸인 경우와 같이 반드시 부엌 앞 쪽에 달려 ㄱ자형으로 되어 있다. 이 중간계층의 주거에는 거의 우사가 달려 ㄱ자 곡가(曲家)로 되어 있다. 이것은 이 계층이 직접 농경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소가 불가감한 것으로 되어 있는 탓이며 우사가 부엌과 직결되어 있는 것은 설한시의 소 관리에 편리하기 때문이다.
우사가 없는 6칸 복열식 직가(直家)는 경제상태가 곡가만 못한 신접 살림집 들이다.
오봉리는 한와집이 집단적으로 많다는데 특색이 있지 마는 이들 한와지붕이 다 팔작 정규 지붕으로 되어 있고 맛배지붕이라던가 약식지붕으로 된 가옥은 한집도 없고 건축연대도 최근의 것은 없으므로 50~150년전의 집들이다. 여기서 오봉리의 예를 든 것은 오봉리에 전통적중간계층의 가옥이 밀접하여 있는데서 말미암았을 뿐이지 이 상황은 오봉리에만 국한된 상황은 아니다. 고성군내의 전래의 중간층가옥은 다 이에 준한다.
홑집(單列住居): 이 가옥의 특정은 단열(홑집)로 一자 혹은 ㄱ자로 되어 있어 주거로 복열보다 집의 칸수가 작다. 이 주거는 부엌 옆에 안방이 있고 그 끝에 사랑방이 있는 3칸 형태의 것과 모옥(母屋) 3칸에 1칸의 우사가 부엌 앞쪽에 달려 ㄱ자로 되어 있는 것이 있다. 이 형데의 주거는 재래식 주거 중에서 가장 작은 규모의 주거이다. 단열주거 중에 부엌과 방 3칸 합 4칸의 단열주거도 있다. 이 경우 부엌에 안방이 붙어 있고 그 다음에 상방이 있고 상방 옆에 사랑이 있는 一자형의 것과 부엌 앞에 우사가 달려 있는 ㄱ자형의 것이 있다. 부엌 앞에 우사가 달려 있는 것은 소의 관리를 편리하게 하려는 노동단축의 합리성이 내재하고 있으나 위생에는 문제가 있다. 부엌과 우사는 따로 구획이 있는 것이 아니고 서로 통하고 있으며 다만 구유하나가 가로 놓여 있을 뿐이다.
단열4칸집의 공간적 기능은 안방은 주부의 상거실(常居臺)이나 식사등 가족공동의 공간으로 되어 있고 상방은 자녀의 방으로, 사랑은 남자주인의 거실로 외인의 접대도 여기서 한다.
단열집의 경우는 물림퇴가 없는 것이 통상이고 다만 앞 쪽에 마루를 놓은 것도 있고 마루마져 없는 것도 있다.
이상의 재래식주거의 건축재료는 지붕은 한와 또는 초가로 되어 있으나 한와는 금일까지 남아 있으나 초가는 다 없어졌고 그 대신 일상이후로 세멘트기와, 양철, 슬레트로 변하였다. 특히 슬레트는 새마을운동의 주거개량사업으로 일반화되었고 단일주거는 슬레트가 더욱 많다.
골격은 소나무로 되어 있고 벽은 흙벽에 의부만 세멘트나 백회로 도장하였다.
기타주거(其他住居): 재래식주거 외에 최근 주거양식의 변화로 도시, 농촌, 어촌 할 것 없이 그 양식이 변모하여 가고 있다. 부엌이 입식으로 되고 거실이 마루로 만들어지고 있고 창과
문이 재래식건축에서는 볼수 없는 도어나 유리로 되어 있다. 지붕은 세멘트기와나 슬라브를 치고 재료는 세멘트 벽돌을 쌓아 벽을 만들었다. 공간구조도 재래식 목조와는 달라 마루방 거실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고 변소도 실내에 들어와 있다.
◇ 어명기(魚命驥)가옥
위 치 :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삼포리 551
지정자료 : 중요민속자료(제 131호)
지 정 일 : 1984년 1월 10일
소유자 및 관리자 : 어명기
건축년도:약 250년이상으로 추정
본 건물은 약 400년전에 건축되었는데 화재로 인하여 전소된 것을 서기 1750년대에 어태준(魚泰俊 숙종 31년 을유년, 서기 1705년 10월12일생~영조 34년 무인년 서기 1758년 12월 20일졸 贈通訓大夫司僕寺正)이 동일 장소에 그전 모습대로 약 3년간에 걸쳐서 재건축하였다 한다.
어명기의 2대조 조부인 어명주께서 1860년대에 본 가옥을 농토 약 3,000평으로 구입하였다가 후손에게 유언으로 대대손손 본 가옥만은 절대로 매각치말라는 당부가 있었다.
1946년 3월6일 북한의 토지개혁 때에 5정보이상의 지주로 가옥이 몰수되어 '인민위원회사무실'로 사용되었고 1950년 6.25동난시는 한국군 제1군단 사단사령부 병원으로 사용하다

옛 가옥구조를 그대로 보존하며 전수되어오는 어명기 가옥

어명기가옥 평면도(1:50)
8칸 복열식에 있어서는 부엌 2칸이 앞뒤로 터져 있고, 앞 쪽으로 2칸의 마루가 있으며 그끝에 사랑방 1칸이 있다. 마루 뒷쪽 부엌과 벽으로 이어져 있는 방이 안방이고 그 다음이 도장이다. 그 옆 사랑방의 뒷쪽에 웃방이 달려 있으며 웃방은 사랑방과 장지로 개폐되게 되어 있다. 주옥의 기능은 6칸 복열과 같고 다만 마루가 1칸 더 크며 웃방이 하나 더 있는데 이 방은 아이들의 방이다. 이 가옥 양식에 우사나 곡간이 달렸을 때는 6칸인 경우와 같이 반드시 부엌 앞 쪽에 달려 ㄱ자형으로 되어 있다. 이 중간계층의 주거에는 거의 우사가 달려 ㄱ자 곡가(曲家)로 되어 있다. 이것은 이 계층이 직접 농경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소가 불가감한 것으로 되어 있는 탓이며 우사가 부엌과 직결되어 있는 것은 설한시의 소 관리에 편리하기 때문이다.
우사가 없는 6칸 복열식 직가(直家)는 경제상태가 곡가만 못한 신접 살림집 들이다.
오봉리는 한와집이 집단적으로 많다는데 특색이 있지 마는 이들 한와지붕이 다 팔작 정규 지붕으로 되어 있고 맛배지붕이라던가 약식지붕으로 된 가옥은 한집도 없고 건축연대도 최근의 것은 없으므로 50~150년전의 집들이다. 여기서 오봉리의 예를 든 것은 오봉리에 전통적중간계층의 가옥이 밀접하여 있는데서 말미암았을 뿐이지 이 상황은 오봉리에만 국한된 상황은 아니다. 고성군내의 전래의 중간층가옥은 다 이에 준한다.
홑집(單列住居): 이 가옥의 특정은 단열(홑집)로 一자 혹은 ㄱ자로 되어 있어 주거로 복열보다 집의 칸수가 작다. 이 주거는 부엌 옆에 안방이 있고 그 끝에 사랑방이 있는 3칸 형태의 것과 모옥(母屋) 3칸에 1칸의 우사가 부엌 앞쪽에 달려 ㄱ자로 되어 있는 것이 있다. 이 형데의 주거는 재래식 주거 중에서 가장 작은 규모의 주거이다. 단열주거 중에 부엌과 방 3칸 합 4칸의 단열주거도 있다. 이 경우 부엌에 안방이 붙어 있고 그 다음에 상방이 있고 상방 옆에 사랑이 있는 一자형의 것과 부엌 앞에 우사가 달려 있는 ㄱ자형의 것이 있다. 부엌 앞에 우사가 달려 있는 것은 소의 관리를 편리하게 하려는 노동단축의 합리성이 내재하고 있으나 위생에는 문제가 있다. 부엌과 우사는 따로 구획이 있는 것이 아니고 서로 통하고 있으며 다만 구유하나가 가로 놓여 있을 뿐이다.
단열4칸집의 공간적 기능은 안방은 주부의 상거실(常居臺)이나 식사등 가족공동의 공간으로 되어 있고 상방은 자녀의 방으로, 사랑은 남자주인의 거실로 외인의 접대도 여기서 한다.
단열집의 경우는 물림퇴가 없는 것이 통상이고 다만 앞 쪽에 마루를 놓은 것도 있고 마루마져 없는 것도 있다.
이상의 재래식주거의 건축재료는 지붕은 한와 또는 초가로 되어 있으나 한와는 금일까지 남아 있으나 초가는 다 없어졌고 그 대신 일상이후로 세멘트기와, 양철, 슬레트로 변하였다. 특히 슬레트는 새마을운동의 주거개량사업으로 일반화되었고 단일주거는 슬레트가 더욱 많다.
골격은 소나무로 되어 있고 벽은 흙벽에 의부만 세멘트나 백회로 도장하였다.
기타주거(其他住居): 재래식주거 외에 최근 주거양식의 변화로 도시, 농촌, 어촌 할 것 없이 그 양식이 변모하여 가고 있다. 부엌이 입식으로 되고 거실이 마루로 만들어지고 있고 창과
문이 재래식건축에서는 볼수 없는 도어나 유리로 되어 있다. 지붕은 세멘트기와나 슬라브를 치고 재료는 세멘트 벽돌을 쌓아 벽을 만들었다. 공간구조도 재래식 목조와는 달라 마루방 거실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고 변소도 실내에 들어와 있다.
◇ 어명기(魚命驥)가옥
위 치 :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삼포리 551
지정자료 : 중요민속자료(제 131호)
지 정 일 : 1984년 1월 10일
소유자 및 관리자 : 어명기
건축년도:약 250년이상으로 추정
본 건물은 약 400년전에 건축되었는데 화재로 인하여 전소된 것을 서기 1750년대에 어태준(魚泰俊 숙종 31년 을유년, 서기 1705년 10월12일생~영조 34년 무인년 서기 1758년 12월 20일졸 贈通訓大夫司僕寺正)이 동일 장소에 그전 모습대로 약 3년간에 걸쳐서 재건축하였다 한다.
어명기의 2대조 조부인 어명주께서 1860년대에 본 가옥을 농토 약 3,000평으로 구입하였다가 후손에게 유언으로 대대손손 본 가옥만은 절대로 매각치말라는 당부가 있었다.
1946년 3월6일 북한의 토지개혁 때에 5정보이상의 지주로 가옥이 몰수되어 '인민위원회사무실'로 사용되었고 1950년 6.25동난시는 한국군 제1군단 사단사령부 병원으로 사용하다

옛 가옥구조를 그대로 보존하며 전수되어오는 어명기 가옥

어명기가옥 평면도(1: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