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의 문화와 역사

Culture and History

민속

-- 다. 의복(衣服) 손질

작성일
2025-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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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은 개천이 있는 곳에서는 개천가에서 하고 이 세탁장소에는 빨래를 하기 좋은 빨래돌, 삶기 위한 시설이 되어 있고 개천이 없는 마을에서는 공동 우물에서 한다.
빨래 가운데는 삶는 빨래가 있다. 무명류, 즉 면류의 빨래는 비누질을 하여 아이 빨이를 한 다음 양잿물을 넣어 삶는다. 지금은 양잿물은 쓰지 아니하고 비누를 개어 삶는다. 비누가 없을 때에는 나무를 태워 재를 만들고 그 재물을 부어 흘러나온 잿물로 빨래를 하였다. 삶은 빨래는 반드시 방망이로 두드려 빠는데 방망이는 빨래방망이와 다드미 방망이의 두 종류가 있다. 방 망이는 박달나무가 가장 좋다하나 요즘은 빨래방망이는 더러 쓰고 있으나 다듬이 방망이는 사라진지 오래다.
명주 빨래는 손으로 비벼 빨고 방망이는 쓰지 아니 한다. 비누가 귀할 때는 팥가루로 빨래를 하였다.
모시 빨래는 빨래 중에서 가장 어려운 빨래로 자칫하면 올이 치어버림으로 손으로 비벼 빨았다.
재래식 세탁에는 풀메기기가 있다. 빨래를 한 뒤에 천이 빠듯하라고 천에 알맞는 풀을 먹인다. 풀의 종류에는 이풀, 밀가루풀이 있고, 이풀은 밥을 개어 풀을 만든다. 무병 빨래는 바싹말린 뒤에 풀을 먹여 천을 빠듯하게 만들고 명주 빨래는 발이 곱기 때문에 녹말풀을 만들어 먹인다.
풀을 먹인 뒤에는 다시 잘 말려 빨래보에 쌀 때에 약간 물을 추겨 올을 세대로 퍼고 접어서 밟기도 하고 다듬이질을 하여야 할 것은 다듬이질을 한다. 다듬이질은 너무 말라도 못하고 너무 눅어도 못하며 건습이 알맞아야 한다
다듬이질의 용구로는 다듬이돌, 방망이, 홍두깨가 있다. 이 세개는 다 재질이 단단하여야 하므로 박달나무를 쓰고 다듬이돌 만은 석재로 하기도 한다. 다듬이질은 혼자서 하기도 하고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맞다듬질도 한다. 그 소리는 멀리서 들으면 한국 사람들 만이 느낄 수 있는 서정적인데가 있다.
명주빨래의 다듬이질은 다듬이돌과 홍두깨의 두 과정을 거친다. 처음에는 다듬이돌에서 다듬이질을 하다가 그 빨래가 건습이 알맞으면 이것을 홍두깨에 감아서 홍두깨 다듬이질을 한다. 홍두깨는 지름 7~8cm정도의 둥근나무로 가운데가 약간 불룩하다. 이것은 다듬이질의 전용이 아니고 국수하는데도 쓰인다. 이 홍두깨에 명주를 감아 홍두깨틀에 올려놓고 그 틀이 이동하지 않게 다듬이돌로 눌러 놓고 방망이로 다듬이질을 한다. 명주 다듬이는 다듬이돌에 접어 놓고 하고 접힌 곳은 다듬이질이 되지 아니하여 깨끗하지 못하나 홍두깨 다듬이는 둥글게 되어 있으므로 고루 다듬어지며 이 때 사람이 옆에서 조금씩 홍두깨를 돌려 고루 다듬어지게 하기도 하며 다듬이질의 반동으로 홍두깨가 저절로 조금씩 궁굴러 진다. 우리의 의복사는 세 단계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그 첫 단계는 복지의 자가생산과 바느질을 통한 의복자가조성기(衣服自家造成期)를 들수 있다. 이 시기는 완전히 자급시기로 수공예기(手工藝期)이다. 다음은 광목, 옥양목, 비단 등 복지를 공장에서 생산한 것을 매입하여 의복조성을 자가에서 한 시기가 있고 그뒤 최근에 와서는 복지의 생산과 의복의 조성이 수공예를 떠나 산업화한 데서 온 기성복시대(旣成服時代)이다. 전래의 의생활은 이 세 단계중 최소 앞의 두 단계까지이고 기성복시대는 전국적인 경향이기에 특정 지방의 의생활에서는 전혀 문제밖이다. 의생활에서 상술한 것 외에 방한을 위하여 팔에 끼는 토시, 허리띠, 대님, 버선이 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