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의 문화와 역사

Culture and History

민속

-- 돐,입학

작성일
2025-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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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돐

돐 전에 출생 백일에 백일을 한다. 돐과 백일의 음식으로는 흰시루떡을 하고 이 음식은 친척과 인근에 나누어 먹는다. 백일은 하는 집도 있고 그대로 지내는 집도 있으나 돐은 거의가 하고 첫 아이일 경우 돐은 외가에서 해 오는 집이 많다고 한다.
백일은 백일상이라는 것을 차리지 아니하나 돐은 돐상을 차린다. 돐상에는 떡, 과일 등의 음식 외에 돈, 붓, 책, 태실을 놓고 아이에게 손으로 집게 한다. 아이가 돌상에서 태실을 집으면 수명이 길다하고, 책을 집으면 커서 학자가 될 것이라 하고 돈을 집으면 부자가 된다고 한다.

다. 입 학

구교육 제도에서의 입학은 동리에 있는 서당에 처음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고성군에서 만 난 구술자 고노들은 거의가 어려서 서당 교육을 받다가 신식 학교에 입학했던 사람으로 통감까지 읽고 학교에 입학한 사람도 있고 논어까지 읽고 입학한 사람도 있으나 고성내에는 서당훈장을 지낸 생존자는 거의 없다고 한다. 구시대의 교육 기관으로 관학은 향교가 있고 사학은 서원과 서당이 있으나 현존하는 고노(古老)들은 향교나 서원에서 교육받은 사람은 찾을 수 없고 서당에서 교육받은 사람이 고작이다.
서당의 입학 연령은 6,7세이고 첫 교과는 천자문이다. 교육 방법은 암기위주로 되어 있어 종일 낭독한다. 식사 때만 집에 와서 식사를 하고 낮은 물론 밤에도 서당에서 합숙을 하면서 글을 읽는 서당이 있고 낮에만 서당에서 학습하고 해가 지면 집에 와서 자는 서당이 있다. 아침에 훈장 앞에서 절을 하고는 그 자리에 꿇어 앉아 전날 배운 부분을 암송한다. 이 때 암송이 되면 그 날 배울 것을 가르쳐 주고 암송을 못하면 종아리를 맞고 전일 배운데를 암송할 때까지 다시 배운다. 휴식 시간은 중식 시간에 한번만 쉰다고 하나 이는 지방에 따라 서당에 따라 다르다. 강릉이나 임계 지방의 서당에서는 오전과 오후에 한차례 쉬는 시간이 있으나 고성 지방에서는 중식 시간외에는 쉬지 않는다고 한다.
서당의 교육은 학년제가 아니고 능력제로 되어 있다. 한 과정을 다 낭송하여야 다음 과정으로 들어 가게 되어 있으므로 동일에 입학을 했다 할 지라도 개인의 능력에 의하여 진도에도 큰 차이가 있게 된다. 같이 입학하여 한 사람은 아직도 천자문을 다 띠지 못하였는데 다른 사람은 동몽선습(童蒙先習)까지를 마칠 수 있다. 낭송위주로 되어 있으므로 책 한권을 띠었다는 것은 그 책을 다 암송한다는 것이고 교육 내용이 암송으로 되어 있으므로 저녁 귀가시에는 그날 배운 것을 암송하여야 귀가하게 된다. 책을 한권 띠게 되면 '책거리'라는 것을 한다. 이 '책거리'는 서당에 따라 습속이 다르다. 거진읍 송정리 서당에서는 '책거리'는 책을 띤 학동 집에서 시루떡과 술을 만들어 서당에 가져와서 학동과 학부형의 공동축연을 했다 하고 교동리 서당에서는 음식은 만들지 않고 학동마다 백지 한장씩을 책을 띤 학동에게 축하의 기념으로 기증한다. 모든 학동이 기증한 이 백지는 이제 새 책을 배워야 할터이니 이 백지로 책을 매어 새로 배울 책을 필사하여 새 책을 만들라는 뜻이라고 한다. 서당 학동중에서 학교과를 마치고 나면 다음 교과의 책을 만들기 위하여 성황당이나 산신당에 치성드리기 위해서 갖다 놓은 백지를 학동들이 몰래 가서 떼오는 습속도 있었다.
주단위의 교과 운영이 아니므로 주말의 휴일은 없고 교동리 서당에서는 1일과 15일이 휴일로 되어 있었다고 하고 송정리에서는 명절, 연말, 연시에만 휴업을 하였을 뿐 그 외에는 휴일이 없었다고 한다.
서당의 조직은 훈장(訓長)과 접장(接長)으로 되어 있다. 접장은 학동중에서 고령자로 최상급의 책을 읽는 사람을 뽑아서 처음 입학한 학동을 틈틈이 일깨워도 주고 훈장이 부재시에 서당을 이끌어 간다. 책은 저급용은 거의가 한지로 매어 필사본을 썼으며 경서는 인쇄본을 줬다.
경서를 개인이 전질을 구유한다는 것은 어려우므로 서당을 중심으로 그곳 부락민이 서당계를 만들어 계에서 한 질을 구입하여 돌려가면서 읽는 데도 있다.
서당에 필수적인 용구로 문방사우와 분판이라는 것이 있다. 문방사우중 종이와 붓은 각자가 준비하나 벼루와 먹은 공동용이 있어 서당에서의 글씨 연습은 이것을 쓴다. 서당은 입학은 있으되 졸업은 없다. 천자에서 시작하여 상급과정이 되면 경서, 문학, 사류 등을 통과하고 이 중 특히 경서를 중견하여 이것으로 서당 이수의 척도로 삼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학의의 측정도 이것으로 한다. 이 지방의 서당에서는 사서 정도가 고작이고 훈도없이 한문문전을 독해 할 수 있고 율시(律詩) 한 수 제대로 지을 수 있으면 졸업이라는 절차없이 서당 생활은 끝이난다.
서당에서 교육 용구로서 앞서 분판이 있다고 하였거니와 이 분판은 두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작은 분판이라 하고 다른 하나는 큰 분판이라 한다. 작은 분판은 넓이 15cm, 길이 30cm 정도의 6매의 판자를겹첩으로 이어 병풍처럼 만들어 접게 되어 있다.
이것은 시작(誇作)을 배울때 초고하는 것으로 자주 지워서 고쳐 써야 할 필요가 있으므로 작시용으로 주로 쓰이고 큰 분판은 습자용이다. 즉 큰 분판은 저학년용이고 작은 분판은 고학년용이다. 큰 분판은 넓이 30cm에 길이 lOOcm 정도의 것으로 두께는 2cm 정도이다.
서당에서의 습자는 훈장이 이 분판에 본을 한 줄 써주면 학동은 그 옆에 본을 따라 임서한다. 분판에 글씨가 다 차면 걸레로 지우고 다시 쓰는데 이때 훈장의 본 글씨는 지우지 아니하고 학동의 글씨만 지우고 다시 본 글씨를 임서한다. 이러기를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그 글씨가 익었다고 생각될 때 훈장은 본 글씨까지를 모두 지우고 새로운 글씨의 본을 또 써준다. 서당에서의 글씨 공부는 이렇게 하여 이루어진다.

분판은 송판이나 잡목판으로 만든다. 송판에 조개껍질을 미세하게 빻아 이것을 가는 천으로 걸려 판자에 입히고 그 위에 기름을 매겨 반들거리게 만든다. 표리(表裏)는 따로 없고 양쪽 끝에는 마구리를 하고 이 마구리에 끈을 매어 걸어 두거나 메고 다닐 수 있게 만들었다.
서당 용구에 서산과 서산대가 있다. 서산은 글을 몇 번 읽었는가를 알기 위한 것으로 주판과 같은 원리의 것이다. 30cm 사방의 한지에 밀을 메겨 그것을 삼등분하여 접고 그 중간부분에 산자형이나 사자형을 칼로 크게 열개를 새기고 그 윗쪽에는 두줄로 같은 자형을 작게 새겨 접을 수 있게 하고 있다. 위의 두 줄 작은 것은 한 줄에 다섯씩 합 10개로 되어 있다. 그날 읽을 부분을 한번 읽고 밑의 큰 것을 하나씩 접어 간다. 열번을 읽으면 밑의 큰 것을 주판 털 듯 원장으로 하고 위의 작은 것을 하나 접는다. 이렇게 하여 위의 작은 것이 7개 열려 있고 밑의 큰 것이 2개 열려 있으면 이 날 72회 읽었다는 것이다.
서산대는 초학동들이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길이 30cm, 넓이 3cm, 두께 0.3cm 정도의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글자를 읽을 때에 읽는 글자를 한자 한자 접기 위하여 쓰여친다. 서산대는 박
달나무로 많이 만든다
서당에서 글 내기의 하나로 초중종(初中終)이라는 행사가 있다. 이것은 훈장이 임의로 글자를 지적하기도 하고 혹은 한 사람이 지정한 책을 넘기면서 책을 읽는 글자를 골라 하기도 한다. 방법은 주재자가 「초장에 비우(雨)」라고 하면 회동자는 한시의 오언이나 칠언동중에 첫자가 우자로 된 구절, 이를테면「우갈장제초색다(雨㵣長提草色多)」를 외우게 되고 중장은 오 언일 경우에는 가운데 자인 제삼자, 칠언일때는 제사자를 맞추면 된다. 예를 들면 주재자가 중장에 「만날 봉」하면 「마상봉한식(馬上逢寒食)」을 의우면 된다. 이런 식으로 종장은 끝 자를 대면 된다. 이때 주재자는 회합자의 이름을 분판에 예기(列記)하여 놓고 맞추면 그 사람의 이름 밑에 정자로 그 회수를 기표하였다가 가장 많이 맞춘 사람이 그 날의 장원이 된다. 지방에 따라서는 이 행사가 있는 뒤에는 장원을 우대하고 가장 못한 사람에게 수모를 주는 행사를 하여 학동들의 학구열을 자극하는 곳도 있으나 고성지방에서는 교동리나 송정리에 서당이 있었으나 성적고과에 따른 우대나 수모는 하지 않았고 중장은 맞추기 어려워 2점을 주고 염락에서 맞추어도 2점을 주었다고 당시의 서당 학동인 고노가 구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