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의 문화와 역사

Culture and History

역사

++제1절 개황

작성일
2025-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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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장 고성지방의 선사시대

제 1 절 개 황

고성군의 위치는 동해안을 끼고 형성되었는데 태백산맥 동쪽의 영동지방은 기후가 온화하여 일찍부터 인간의 문화가 형성되었던 곳이다. 특히 고성지방을 포함한 양양(襄陽), 강릉(江陵)지방의 문화는 함경도 일대에서 이룩된 한반도 동북부와 경상도 일대의 동남부 문화의 해안을 따라 연결시켜 주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예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 (新石器時代) 유적으로 가장 오래된 곳이 함경북도 옹기군 굴포리와 부산 동삼동으로 밝혀졌는데 바로 이 두 유적을 연결시켜 줄 수 있는 신석기시대 초기 유적이 양양군 오산리에서 최근 발굴 되었고, 1997년 고성군 죽왕면 문암리와 간성읍 동호리에서 신석기시대의 토기와 석기가 다량 채집됨으로써 유적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었다. 특히, 문암리 유적에서는 외벽에 점토를 덧대어 무늬를 만든 융기문(隆起文)과 손톱무늬(아가리부문에만 施文), 종(縱)으로 시문한 점열(點列)무늬, 점열문과 융기문 복합무늬 등 다양한 무늬를 시문한 회갈색조의 토기들이 채집되었고 이들의 기형은 주로 발형(銳形)이며, 저부(底部)는 모두 평저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종류의 토기는 고성지방의 유적보다 남쪽에 위치하는 양양 오산리 선사유적에서 다량 출토된 바 있고 한반도 동북지방의 서포항(西浦頂),강상리(江上里), 농포동(農圃洞) 유적과 서북지방의 신암리(新岩里). 토성리(土城里) 유적 등에서도 출토된 바 있어 이들 지역간의 교류관계. 유적의 입지 환경 주거지의 구조, 토기, 남한 최북단의 신석기 유적으로 새로 확인된 문암리 유적 제작기술 등을 상호 비교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유적이라 할 수 있으며 북한 지역과 남한 소재 신석기 문화의 전파과정과 정로를 밝혀주는 자료가 되고 있다.



또한 동호리 유적에서는 어골문(魚骨文), 평행집선문(平行集線文)과 같은 압인문(押印文)이 시문된 황갈색 및 적갈색을 띤 토기와 간돌도끼 등 30여점의 유물이 지표채집되어 신석기시대 주거지군(群)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유적들의 형성시기는 채집된 유물로 미루어 문암리 유적은 B.C 5천년~4천년, 동호리 유적은 B.C 3천년~2천년 경의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어 지금까지 동해안 지역에서의 신석기시대 문화적 공백을 메우게 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와 같이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B.C 6000년경부터 청동기시대가 시작되는 B.C 1000년경까지 영동지방의 고성(高城), 양양(襄陽), 강릉(江陵)의 평야에 있는 해안선을 따라 거주지를 마련하여 농경, 물고기 잡이, 사냥생활을 하면서 생간경제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생각된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북쪽 마식령산맥(馬息嶺山脈), 광주산맥(廣州山脈) 사이의 추가령지구대를 끼고 흐르는 임진강과 한탄강 유역의 철령(鐵嶺) 이북지방, 북한강 유역의 춘천지방. 남한강 유역의 원주지방 등에서도 당시 사람들이 집단으로 생활 했으리라 추정된다.

청동기시대에 이르러 고성지방을 포함한 강원도 일원에서는 수 많은 부족국가들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시기의 유적은 주거지, 지석묘, 석관묘. 적석총 등이며 그곳에서 함께 출토되고 있는 민무늬토기 , 마제석기 , 농기구 등을 통하여 당시 부족국가의 규모를 짐작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고성을 중심으로 한 삼척(三陟), 강릉(江陵), 양양(襄陽)지방에서는 청동기시대의 유적, 유물이 집중적으로 출토되어 마제석기와 민무늬토기가 당시 사람들의 무덤인 지석묘와 함께 출토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지석묘가 영동지방에 밀집되어 있는 것은 부족국가의 존재를 알려 주는 것으로 우리나라와 중국측 자료에 등장하고 있는 예국(濊國)의 영토가 이곳이었을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고성지방에 부족국가가 형성될 무렵 이미 압록강 유역에는 청동기 문화에 기반을 둔 고조선(古朝鮮)이 건국되었고 그 뒤를 이어 부여(扶餘)가 자리잡고 있었으며 철기문화에 기초로한 고구려가 등장하였다. 한강 이남에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律)의 부족연맹국가가 있을 때 고성지방을 포함한 영동지방에는 예(濊)라는 나라가 존재하였고 춘천지방 일대에는 맥국(貊國)이 있었다는 사료가 있어 지금까지 양쪽지역에서 발견된 청동기와 초기 철기시대에 해당하는 유적들과 연결될 가능성이 많다고 하겠다. 바로 이들 지역에서 대량으로 축조되어 현재까지 남아 있는 지석묘는 이를 증명하여 주는 것이다. 또한 초기 철기 시대의 유적도 영동지방에서 발견되어 철기 문화가 일찍부터 이루어졌음이 증명되었다.

사진 : 해발 40m야산 능선에 자리한 인정리 청동기유적(앞쪽의 바위는 지석묘의 지석과 덮개석).